교회음악의 거장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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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최고의 교회음악 작곡가 팔레스트리나(G. P. da Palestrina, 1525-1594년)는 고향의 '산타 가피타 대성당'의 소년성가대원을 지낸 뒤, 1537년 로마에 진출하여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당'의 성가대 단원이 된다. 그는 1544년 변성기로 말미암아 귀향하여 '산타 가피타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 겸 성악교사를 지내게 되는데, 그곳에서 델몬테 추기경과 친교를 맺게된다. 1550년 율리우스 3세 교황이 된 델몬테 추기경은 그의 음악적 재능을 기억하고 베드로 대성당의 악장으로 임명하였고, 1554년 팔레스트리나는 최초의 미사곡집을 간행하여 감사의 뜻으로 율리우스 3세에게 헌정 한다. 1555년 율리우스 3세의 추천에 의하여 무시험으로 교회음악가의 최고영예인 교황 카뻴라의 가수가 된다. 율리우스 3세와 그 후계 교황이 연이어 세상을 떠난 후 '라테라노 대성당'과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당'의 악장을 지내기도 하였고, 1586년에는 '교황 카뻴라 작곡가'(Compositore della cappella Apostolica)라는 생애 최고의 영예를 받는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20년도 되지 않아서 그는 경외와 신비에 쌓여 교회음악의 우상적 존재로서 숭배된다. 그는 미사곡 105곡 외에도 450여 곡이 넘는 엄청난 양의 교회음악을 작곡하였는데, 거의 대부분이 무반주합창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의 곡이 갖는 고요함과 속세를 초월하는 작풍은 교회음악의 모델로 간주되고 있으며, 작곡기법의 완벽성은 지금도 대위법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모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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